안녕하세요. 친구님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입니다.
차차와 함께 보낸 5월, 어떠셨나요?
차차는 이수지 작가님의 「나 홀로 라이브」를 읽으며 6월을 시작할 힘을 얻었어요.
이수지 작가님의 그림책을 펼치면 책 바깥으로 파도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고 책장을 넘기면 검은 새가 성큼 다가올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그림책은 차차에게 ‘라이브 페인팅’ 이기도 합니다.
○ 그림책 작가의 말 이수지 「나 홀로 라이브」
○ 시 김연덕 「은색 상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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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라이브
《페이지를 건너다: 이수지의 그림책》 전시 설치를 마치고 방금 올라왔다. 눈이 내릴 때 답사했던 제주현대미술관에 이제 꽃이 내린다. 벚꽃, 유채꽃 그리고 동백꽃이라는 비현실적인 색 3종 세트 꽃향기에 취하며 그림을 걸고 왔다.
아이들과 함께 놀 때만은 예외지만 대체로 '라이브 페인팅'은 좋아하지 않는데, 북페어나 각종 행사의 주최 측은 종종 이걸 요구한다. 방송 촬영 시 필수처럼 여겨지는 그림 그리는 장면 연출도 고역으로 느껴지곤 한다. 화면에 영원히 박제되는데 라이브로는 늘 망친다. 첫 선이 나갈 때 이미 안다, 이런 젠장.
이번 미술관에서도 ‘라이브 페인팅’을 하다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발적이었으며, 관중 없이 혼자였다는 거다.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실의 한 면은 커다란 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가 너무 강하게 들어 그쪽 벽에 그림을 걸었다가는 다 상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프린트를 붙이고 그 위에 연장하여 조금 더 그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전시를 펼쳐 놓고 모두를 바쁘게 만든 후,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시간,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창 바깥 돌담엔 꽃잎이 날리고 고요한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큰 벽에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드로잉을 하고 있자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수없이 도색된 전시실 벽 표면은 울퉁불퉁하여 오일 파스텔이 성기게 겨우 묻었지만, 재료를 바꿔 가며 슥슥 긋는다. 적당히, 보는 이의 흥이 슬쩍 느껴질 정도로만. 길게 선을 긋는 내 팔의 움직임을 의식한다. 물방울을 표현하려 작은 점 스티커를 붙이는 내 손끝의 감각을 의식한다. 이런, 나는 정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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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꼭대기에 붙인 그림에 점을 찍기 위해, 전날 공사하시던 분들이 놓고 간 아시바 2층에 올라섰다.(이건 ‘비계’라기보다 ‘아시바’라 해야 올라갈 맛이 난다.) 3층은 못 올라가겠고, 2층에서 키 닿는 부분까지만 그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전시 설치 사흘째, 손과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지친 작가에게 3층은 무리야……. 이따금 작가의 확인이 필요한 다른 전시실의 부름에 응답하고 돌아와 호흡을 가다듬고 또 선을 긋는다. 무얼 했는지 모르겠는데 금방 두 시간이 갔다.
그림책이 좋은 이유는 이 작업이 실시간 ‘라이브’가 아니라 구석에서 조금씩 시간을 쌓아 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음 생엔 뮤지션이 되겠어!' 생각했지만, 이번 생은 드러나지 않는 시간을 쌓아 당신의 손에 조용한 결과물을 전하기로 결정했다. 『여름이 온다』처럼 그림책은 음악을 들으며 그린 즉흥적인 결과물처럼 보여도, 실은 대단히 논리적인 과정과 기획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그런 이유로 ‘쌉 T’인 나는 그림책과 꽤 잘 맞는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대단히 명료한 논리가 어처구니없이 말랑하고 힘찬 그림의 힘으로 쌓아 올려진다는 건, 처음부터 모순이다. 그 모순이 매력이다. 그림의 힘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우울해서 빵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실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라 하더라. 가끔 참을 수 없는 그림들도 있지만, 대체로 나도 내가 긋는 선을 좋아한다. 이토록 정적인 그림책을 하면서, 아시바에 올라 이토록 동적인 전시를 또 해볼 생각을 하는 건 모순이다. 전시 한 번 할 때마다 십 년씩 늙는 기분인데, 이러고 또 셋째를 낳겠지, 이런 젠장.
《페이지를 건너다: 이수지의 그림책》 장소: 제주현대미술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14길 35)
일정: 2025년 4월 11일(금) ~ 6월 29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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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이 작품을 쓰고 그릴 때 가장 많이 본 풍경은 무엇인가요? 수지 흩날리는 벚꽃 잎
차차 그림을 그릴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나요?수지 요즘은 <🎵 Joji>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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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수지
그림책 작가.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북아트를 공부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냈다. 책의 물성을 이용한 작업과 글 없는 그림책의 형식으로 아이들의 놀이와 에너지를 책에 담는다. 한국의 옛이야기를 새롭게 독립출판물로 만드는 ‘흰토끼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춤을 추었어』, 『여름이 온다』, 『강이』, 『선』,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 『거울속으로』 등이 있다.
www.suzylee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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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처럼 이수지 작가님의 전시가 보고 싶어진 친구들을 위해 전시 정보를 함께 올려두었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이수지 작가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팔의 움직임과 손끝의 감각을 의식하는 작가의 말을 따라 차차의 팔이, 손끝이, 수염이 떨리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구나 깨닫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님은 어떤 행동을 하는 동시에 이걸 내가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던 순간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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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이 작품을 쓰고 그릴 때 가장 많이 본 풍경은 무엇인가요? 연덕 실제로 이모의 자동차 안에서 흔들리던 은색 별 스트랩을 본 것에서 시작된 시였어요. 시에서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고, 안팎의 공기가 매우 차분한 날이었어요. 바깥의 색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요. 그러던 와중 앞 좌석 거울에 달린 은색 별에 눈이 간 거예요. 저 귀엽고 유치한 별이 궁금해졌죠. 제가 저 별 특징적이라고 이야기하니, 이모는 자신이 돌보는 할머니가 주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모는 방문 요양 보호사인데, 이때 차를 타고 가며 이모가 돌보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지금 이 순간이 시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와 별 스트랩 영상을 찍어두었어요. 그리고 한동안 그 영상을 반복해 돌려보았던 것 같아요. 맑은 날에도, 이모를 만나지 않는 날에도요. 제가 이 시를 쓰며 가장 많이 본 풍경은 바로 사진 속 별이 바라보던 풍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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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가장 좋아하는 카페나 음식점을 소개해주세요. 연덕 멀리 있어 자주 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자주 가는'이 아닌 '가장 좋아하는' 곳을 물으셨으니 제 기억에 가장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는 카페를 소개하고 싶어요. 지난겨울에 방문했던 삿포로에 있던 곳이었는데요. <喫茶キング5>라는 곳이고, 삿포로의 수산 시장인 니조 시장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어요. 아침 7시 30분부터 문을 열고요. 저는 아침 8시경 방문했는데, 골목 끝에 있던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약간의 먼지 냄새와 함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답니다.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저 혼자였는데 격자무늬 창으로 거리의 눈과 빛이 섞여 들어왔던 것이 떠올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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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시를 쓸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나요?연덕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그룹 ironomi의 앨범을 통째로 틀어놓고 들어요. 자연이나 어린 시절을 주제로, 가사가 없는 음악을 만드는 그룹인데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드는 감정과 비슷한 시를 쓰고 싶다고 늘 느낍니다. 이번 시를 쓰면서도 역시 ironomi의 음악을 들었는데요,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앨범은 2009년에 발매된 앨범인 <🎵' ubusuna'> 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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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재와 사랑의 미래』, 『폭포 열기』,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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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누군가를 돌보는 손을 떠올려봅니다. 그 손은 어떤 모습일까. 쓰다듬으면 어떤 느낌일까. 떠올리다보니 손에도 얼굴이 생길 것 같았어요.
6월의 수요일에도, 차차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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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친구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 작가 최민지입니다.
그림책 작가의 그림과 글을, 시가 들려주는 이미지를 차차의 편지로 만나보는 시간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번 편지를 읽으며 내 손은 무엇을 쌓아가고 무엇을 돌보고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손 중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림책의 책장을 넘길 때면 한 장면씩 만나는 현장감이 참 좋아요. 책을 만들면서 저는 한 장면에 얼마나 많은 질문이 들어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인물의 크기를 좀 더 줄일까?' '1센티 정도 왼쪽으로 옮겨볼까?' '이 텍스트가 꼭 필요할까?' 하는 것들이요. 한 장면에 쌓여있는 시간을 함께 느끼며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손이 되었습니다. 시의 한 문장을 여러 겹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읽는 것처럼요.
친구님의 손을 소개한다면 어떤 손이라고 말하고 싶나요?
답장을 기다리며,
민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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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차차 울게 해준 오늘의 글들. 두 작가님의 글을 전해주어 고마워요. 차차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요.
➡ 차차를 읽고 차츰 눈물을 흘린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요. 감상을 나눠주어 고마워요!
돌살이 🗻 우정에 대한 작품, 곰곰 생각했는데 질문자 때문인지 정용준 소설 <세계의 호수> 윤기와 무주가 떠올랐어요. 더는 연인이 아닌 두 사람이 오래도록 친구로 남을 수 있으리라고, 아주 가끔 무주가 한국 오거나 윤기가 유럽 영화제 나갈 때 만나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다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얘기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사랑처럼 뜨겁지 않아도 결코 식지 않는 끈끈함으로... 우정보단 '우애'를 나누는 친구로... 어쩌면 영원히? (이별도 작별도 없이!) 이서수 작가님 소설 마지막 문장 "단지 안부만 물으려던 게 아니었음을 연주는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안부는 본디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김유나 작가님의 "그 관계성은 마치 삶과 죽음이 함께 빛나는 이 세상의 이상함과도 참 닮아 있는 것 같다."는 문장 몇 번을 읽으며 묵상했는지 몰라요. 감동적인 레터 오래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 돌살이님의 편지를 기다렸어요! 매번 답장을 보내주어 차차도 답장을 쓰고 싶었거든요. 뉴스레터로 이어지는 우정 같다고나 할까요? 덕분에 '우애'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고마워요 ~
작은코👃🏼 차차, 안녕. 이번 호부터 처음 차차를 만났어. 요즘은 일 관련 메일만 한가득인데 그 사이에서 문득 친구에게 편지를 받은 듯 기분이 조금 좋아졌어. 매주 수요일은 덕분에 조금 설렐거야.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정용준 작가와 이서수 작가의 글이 있어 더 반갑더라고. 우정의 관한 책이라는데 이상하게 난 최근에 읽은 <서울 아이>라는 소설이 생각났어. 그 책은 친구에 관한 책은 아니거든. 서울역 광장에서 아이언맨(사실은 아빠야)을 찾으러 간 형을 기다리는 아이 이야기인데, 외로운 그 아이 곁에 남들은 노숙자라고 혹은 불쌍한 여자라고 이야기하는 귀차니 아줌마가 옆에 있어. 차차의 편지를 읽다가 우정의 관한 책이라는데 그 둘이 생각났어. 그렇게 나누는 마음도 우정이지 않을까? 꼭 나이가 같은 친구여야 우정을 나누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두서없이 썼네. 차차, 다음 주에 또 만나.
➡ 최근에 차차를 만난 독자 친구! 반가워. 업무 메일 사이에 놓인 차차의 편지가 반가웠다니 너무 좋고 다행이다. 알려준 책도 찾아봤어. 박영란 작가의 장편소설이네! 다양한 우정의 모습을 친구들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다. 다음 주에도 편지로 만나!
개미소용돌이 🐜 차차와 차차 친구들에게 우정에 관한 소설로 R.F. 쿠앙의 『옐로페이스』를 추천하고 싶어! 나는 우정에는 다양한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마냥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친구끼리도 질투하고 때론 미워하고 다시 용서하고 이해해 보기도 하잖아. 전혀 몰랐던 친구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고 낯선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말이야. 『옐로페이스』에 딱 그런 관계가 등장해. 유명 작가와 무명 작가가 친구로 나오는데, 어느 날 유명 작가가 죽고 나서 무명 작가가 그의 원고를 훔쳐서 출판하게 돼. 그 과정에서 우정과 동경,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데 그게 엄청 재미있어. 마냥 아름답고 따뜻하기만 한 우정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롭게 읽었어. 나에게도 이런 친구 관계가 있는지 돌아보게도 되었어. 차차는 읽어 봤어?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 와 이런 섬세한 추천 너무 좋다. 검색해 보니 서점에서 봤던 기억이 나. 샛노란 표지가 인상적이었거든. 이번 주 친구들의 편지에서 책 추천을 많이 해줬어, 덕분에 차차는 이야기 읽느라 수염이 길게 자랄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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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님
오늘 차차의 편지는 어땠나요?
1분만 시간을 내서 차차에게 후기를 보내주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차차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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