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와 대학 동기로 만나 졸업 후 함께 차린 가게는 다음과 같다.
1) 옷 가게 (+쇼핑몰)
2) 네일 아트 숍, 꽃집
3) 쌀국숫집, 꽃집
4) 북 카페, 꽃집
5) 술집, 꽃집
우리가 검토하거나 가계약까지 갔다가 그만둔 가게는 이것의 세 배쯤 된다.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꾸고, 쫓고, 망하고, 다시 꿈꾸기를 반복한다. 기민한 2인조처럼 치고 빠지며 망원동으로, 연남동으로, 경리단으로, 효창 공원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직전에 진지를 구축했다가 월세가 오르면 문을 닫고 다시 파라솔을 펼치듯 다음 가게로 나아갔다. 돈은 좀 모았냐고? 연관성이라고는 없는 저 리스트를 보면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매번 한 줌의 단골을 만들었지만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매출이 충분했던 적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젊음과 호기심과 에너지가 남아돌기 때문에 오뚝이처럼 서로를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처음부터 장사할 생각은 아니었다. 자칭 패셔니스타인 연희가 태국에서 옷을 떼다가 팔기 시작한 것은 여행 경비로 등록금을 날려 먹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알면 난 죽어.” 그녀는 느긋하게 캔맥주를 따며 그러나 다 계획이 있다고 커다란 비닐 가방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모아 온 넝마 같은 옷들이 들어 있었다. ‘이런 옷을 누가 사?’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DSLR 카메라로 모델이 된 연희를 찍어 주었다. 처음에는 한두 점씩 팔리던 것이 나중에는 나까지 택배 발송을 도와줘야 할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 연희는 그렇게 발생한 매출에다 2학기 등록금까지 겁도 없이 털어 다세대 반지하층을 계약해 자그마한 옷 가게를 열었다. 레일 조명을 달고 촬영과 발송을 돕는 대신 수익의 얼마가량을 받기로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이 청춘을 전부 바친 동업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기숙사 신청에 떨어져 갈 데 없어진 나는 연희의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식물도 키우고 과제도 하고 우체국에 다녀왔다. 방학이 되자 연희는 나를 데리고 태국으로 떠났다. ‘사입’도 할 겸 물건도 보고 물정도 알아야 한다나?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반지하 가게는 장마에 습기를 먹어 작살이 났고, 옷들은 명운을 다한 가게의 운명에 맞췄는지 전처럼 팔리지 않았다.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연희는 졸업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장사에 나섰다. 사장님 소리를 듣는 것에 자신이 붙었는지 몇 번의 쇼핑몰을 거쳐 네일 아트 숍을 차렸다. 어깨너머로 배운 타로를 공짜로 봐 주면서 손님을 모으던 연희는 한동안 의기양양하게 지냈다. 그러나 꾸미고 가꾸기를 좋아하지만 그건 자기 몸뚱이 한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연희의 두 번째 가게는 보증금만 까먹으며 난파선처럼 침몰했다. 그 무렵 직장을 그만둔 나는 플로리스트 강습을 받고 있었다. 시험 삼아 만든 꽃다발은 연희의 가게에서 팔기로 했다. 숍인숍이라고 할까.
“이러다 신불자 되게 생겼어.”
청년 창업 자금 대출로 7천만 원을 빌린 연희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뜻밖에 식당을, 그것도 쌀국숫집을 차린 것이다. 그동안 툭하면 기분 전환 삼아, 사업 구상을 한다며, 매출이 올라서, 혹은 떨어졌다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저가 항공권을 검색해 짬짬이 여행을 다니더니 베트남의 한 시골에서 ‘실패할 수 없는 레시피’를 얻었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퇴직금 절반이 그 가게에 흘러 들어가 있었고, 점심 장사만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이 어느덧 함께 출퇴근을 하기에 이르렀다.
유일하게 큰돈을 만져 본 가게는 이 쌀국숫집이었다. 연희의 본가가 강원도 횡성이라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머님이 보내 주신 횡성 한우를 쌀국수에 넣으니 갈비탕 못지않게 든든할뿐더러 국물 맛도 끝내줬다. 웨이팅을 불사하고 손님들이 찾아오자 우리는 밤낮으로 가게에 매달렸다. 어느덧 서른이 넘은 우리는 돈 쓰는 재미보다 돈 버는 재미에 눈을 뜨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지, 가게 안을 꾸밀지, 장사를 더 키울지 고심하며 몸을 갈아 넣어 일을 하다 한 차례씩 쓰러진 적도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나에게는 작은 불만이 있었다.
“제발.”
나는 가게를 열 때마다 당부하곤 했다.
“손님들과 연애는 하지 마.”
연희는 별소리 다 듣겠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고, 보란 듯이 이 말을 어겼다.
무슨 가게를 하든 단골이 생겨난 건 연희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가게인지 어장인지, 연희는 일련의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하하호호 한담을 나눌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코너에 놓여 있는 꽃들에게로 물러나 작은 화분에 물을 주거나 꽃다발을 만들었다. 어디서든 생화가 담긴 양동이를 가져다 놓으면 그곳은 꽃집이 된다. 설령 팔리지 않더라도 꽃이 있으면 장소가 환해지고 온종일 가게에만 매여 있는 답답함을 가라앉힐 수 있다. 꽃집을 하기 위해 가게를 하는 건지, 가게를 하다 보니 꽃집도 겸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보호를 받는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식물에게서 평안을 얻었다. 작약과 장미와 수국과 유칼립투스야말로 진정한 연인이 되어 주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꽃을 사랑한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매출이 떨어지자 연희는 재바르게 가게를 청산했다. 시작할 때는 겁 없이, 망조가 보이면 신속하게 철수하는 게 그녀의 철칙이었다. 정산을 마친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거처를 따로 만들어 갈라졌다. 한때는 가게에서 먹고 자며 지냈고, 한때는 같은 고시원에서 출퇴근한 적도 있지만 돈이 생기면 가게에 투자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주거 환경은 형편없었다. 둘 다 가게와 서로에게 얽혀 있는 채 젊음이 다 지나가는 것이 두려워지는 참이었다.
“가게 망한다고 인생 망하는 거 아니잖아.”
폐업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말로 서로를 위로했다.
연희는 세계 일주를 떠났고, 나는 전셋집을 얻고 대형 화훼 단지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월급쟁이가 되어 꽃을 만지는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어느덧 연희와의 창업에 중독된 것일까? 사람들의 목소리, 그날의 기분과 무드, 비슷하면서도 다른 리듬 속에서 틈틈이 꽃을 대하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장사를 접은 지 3년 만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총대를 멨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효창 공원 뒤쪽에 북 카페를 차려 연희를 부른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빈둥거리던 연희는 득달같이 달려왔다. 연희는 베트남 로브스타 원두로 커피를 기가 막히게 내려 주었고, 나는 원목 책장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고 화분과 꽃을 들여놓았다.
우리의 가게는 정말이지 아름다웠고, 찾아 준 손님들도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취향과 재치만으로 가게가 유지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연희의 미모도 시들어 가고 있었고, 매출도 그에 비례해 약간씩 하강하고 있었다.
책보다 꽃이 더 많이 팔리고, 꽃보다 커피가 약간 더 팔리는 정도로는 더 이상 가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운 좋게 싼 월세로 장기 임대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사위를 던져보기로 했다.
“업종을 바꾸자!”
그리하여 오늘 오픈하는 이 가게, 술집을 차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공간에 새로운 가게를 꿈꾸고, 그에 맞는 집기나 소품을 들여놓고, 그곳에 올 손님들을 상상하고, 마침내 ‘그랜드 오픈’을 맞이할 때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그랜드 오픈식, 전 메뉴 20% 할인’
연희는 세워 두는 칠판에 이렇게 적어 문밖에 내놓았다. 대충 올려 묶은 연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앞선 네 번의 가게들을 떠올렸다. 동시에 미래를 당겨 보듯 오늘 시작하는 이 공간의 서사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꽃과 책은 그대로 두고 맥주와 안주를 새로 구비한 이 조촐한 공간 역시 몇 년의 성장과 소멸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낳고 키우고 작별한 모든 별처럼. 우리의 가게들은 지나간 행성과도 같고, 그 선을 다 연결하면 별자리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비 오는 날 첨벙거리며 노는 어린애들처럼 연희와 나는 같은 웅덩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시작하게?” 접힌 우산 앞에서 둘 중 하나가 물어 오면 다른 하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꽃들이 시드는 것처럼 이 가게도 저물면 연희는 동남아시아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모퉁이 가게를 빌려 놓고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그 호출의 대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지만 오늘은 새로운 가게를 여는 날, 그랜드 오픈식이다. 우리의 꿈은 웅장하니까 항상 그랜드 오픈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제 문을 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