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님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입니다.
4월의 마지막 날이에요. 한 달 동안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나요? 차차는 편지 생각을 자주 했어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열어보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답니다.
오늘은 송미경 작가의 그림책 작가의 말을 보내드려요. 내밀한 목소리를 듣는 동안 작가의 비밀 노트나 편지를 읽는 기분이 되었어요. 친구들 모두 귀 기울이게 될 것 같아요.
○ 그림책 작가의 말 송미경 「아무것도 아닌 종이 노트」
○ 시 송희지 「나의 시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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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종이 노트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가족과 밥 먹는 일을 빼곤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나고 조금 괜찮아졌다가도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며칠간 누워 있어야 했다. 아주 사소한 업무들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에도 남은 게 있다. 간간이 종이 노트에 무언가를 그리거나 쓴 것이다.
내가 쓰는 노트는 대부분 148mm×210mm의 크기에 얇은 두께다. 표지가 두꺼우면 무게가 나가고 반으로 접어 사용하기 어려워서 쓰다 보면 너덜거린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얇은 표지를 좋아한다. 표지엔 시작하는 날짜가 적혀 있고 가끔 내가 생각한 그때의 주제나 마음가짐 등도 써 둔다. 외출할 때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가는 날은 있어도 노트를 두고 나가는 날은 거의 없다. 어디선가 이걸 잃어버리면 나는 수치심과 염려와 상심에 빠질 거라서, 아주 비밀스럽게 노트를 챙기고 누군가 보지 못하도록 애쓰지만 집에서는 누가 보든 말든 아무 데나 둔다. 내가 너무 뭔가 많이 써 놓아서 우리 가족은 이걸 펼쳐 읽을 엄두가 안 날 것이다.
다른 창작자들은 어떤 도구로 작업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작업 대부분은 이 노트에서 시작한다.(삶도 마찬가지고.) 어떤 노트는 쓸모 있는 작업으로 가득하고 어떤 노트는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낙서로 채워져 있는데 그건 내가 한 두달 주기로 몸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몸에 따라 마음도 달라진다.) 나는 쓸모없는 기록만 담긴 겨울의 기록이 있어야 쓸모 있는 기록도 채워진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노트를 모아 두고 어느 한 권을 덜어 낸다면 그건 마치 그림책의 한 장면, 이를테면 다른 장면에 비해 초라해 보이거나 여백 뿐인 장면을 덜어내는 것과 같다.(그림책은 이미지의 리듬을 갖고 서사를 진행하기에 약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으면 강렬한 부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더 중요한 노트란 없는 것이다. 내가 채운 모든 낙서는 같은 무게다.
나의 경우 어느 몇 달은 건전지를 새로 갈아 끼운 북 치는 인형처럼 쉼 없이 일을 하고, 몇 달은 건전지가 다 닳은 인형처럼 북채를 허공에 멈추고 살아간다. 가족들은 내게 산책이라도 해 보라지만 비몽사몽하는 중에 하루가 다 가 버려서 그럴 수 없다. 대신 나는 노트를 펼치는 것으로 생존을 이어 가는 셈이다.
이번 늦겨울부터 어제까지 나는 북을 울린 적 없이 지내다가 오늘 새벽 네 시, 차차 원고 마감을 넘기고 넘기고 완전히 넘겨 모든 게 망한 것 같은 시간에야 깨어났다. 그리고 내 두 달간의 낙서들을 펼쳐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시절엔 종이 노트에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 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 때문이다.
2025년 3월 22일 노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지금 여기엔 과거의 사람들이 쿠폰을 들고 줄을 서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래서 잠시 미래로 온 사람들, 다시 돌아갈 과거가 없는 사람들.
거의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요란한 토요일 오후 네 시, 스타벅스에 앉아 과거에서 온 사람들 틈에 서 있다가 앉았다가 죽었다가 살았다가 하는 것이 영 어색하다.
어머나, 저 아이는 일곱 살 같은데 무대 의상을 입고 있어. 그 무대란 칼부림과 피와 충격과 마술이 있는 무대지. 형벌뿐인 무대에 왜 어린아이가 서 있는 걸까?
나는 현대카드 실적으로 받은 스타벅스 무료 음료 쿠폰을 겨울과 봄 내내 계속 쓰지 못하고 기간이 지나 날려야 했다. 밖에 머무는 게 너무나 소름 끼쳐서 혼자서는 밖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만에 기한이 하루 남은 커피 쿠폰을 쓰려고 잠시 카페에 나왔을 뿐이고 다 같이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커피를 주문하다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멍하니 보다가 종이 노트를 펴놓고 고작 일기를 쓴다.’
비참한 기분일 때나 들뜰 때 나는 공책을 펼치고 아무 말이나 적는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노트에 낙서하는 게 좋다. 책은 다음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종이 노트는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이나 휴대폰에 쓸 때처럼 시각적 재촉도 없다. 반드시 책상에 앉을 필요도 없고.
한 권의 종이 노트는 두께가 일정해서 남은 종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사용할 수 있다. 노트에 적는 글들은 마음의 속도를 앞서지 않는다. 어떤 문장을 이어 써야 할 의무도 없다. 문장 대신 그림을 그려도 된다. 커피를 쏟아도 고장 나지 않고 충전할 필요도 접속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헛소리를 종이 노트는 적당히 희미하게 받아 준다. 게다가 종이 노트는 불타거나 잃을지 모른다는 애처로움 때문에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물에 젖어 잉크가 날아가 버리거나 병원 대기실 혹은 열차에 두고 내려서 사라져 버린 기록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지만 바로 그 점, 종이 노트의 연약한 물성과 유한성은 오히려 노트의 격을 높여 준다.
물론 여기에 뭘 써 두고 찾을 땐 ‘내 문서 찾기’같은 기능이 없어서 며칠간 휘갈겨 쓴 공책을 뒤적여야 하는 수고가 있고, 비밀번호를 걸어 둘 수도 없고 오직 물리적인 공간에 저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정도는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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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타깝게도 나는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건강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은 아닐 것 같다. 산책이라는 좋은 습관 없이도 내가 이상하고 낯선 생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쉬지 않고 종이 노트에 선을 산책 시켜서라고 믿는다. 마음의 움직임과 놀이의 흔적이 물리적인 종이 뭉치 안에 존재하고 집안을 굴러다니는 걸 보면 내게 어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내일도 있을 거라 기대하게 된다. 덕분에 멈춰 있는 이런 날이나 달리는 어떤 날들을 똑같은 중량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 노트 위의 낙서는 일정한 글자의 크기나 간격에 구애받지 않고 검열받지 않는다.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그 다리는 연속된 다리라기보다는 징검다리 같다.) 아이와 어른, 현실과 비현실, 무력과 기력, 의미와 무의미를 넘어서는 자유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의 움직임 자체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종이 노트 쓰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단어와 문장이 의미를 넘어 그림의 형태로, 시간을 따라 움직인 리듬으로 정돈되지 않고 존재하기에 낙서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역동할 수 있다. 또한 쉽게 ‘삭제’되거나 ‘붙여 넣기’ 되지 않은 종이 위의 산책은, 그 선이 닿는 모든 지면에 몸의 기록을 남긴다. 그날 사용한 필기 도구, 글씨체, 필압, 가지런함의 정도, 여백에 그려진 작은 도형 낙서들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게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노트에 동그라미 백 개를 그리고 나면 시곗바늘이 한 걸음 가 있다. (실험해 본 바로는 1분에 대략 110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
1월 7일자엔 이런 낙서가 있다.
‘사람들이 제임스에게 자꾸만 조각 케이크나, 바움쿠헨 같은 것을 사 주려 한다. 제임스가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고 있고 제임스가 어떤 시를 쓸 수 있는지 알고 있고 제임스가 결코 그런 빵 조각 때문에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으리란 것도 알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대체로 빵을 마다하지 않는다. 빵에는 유통 기한이 있고, 그것이 고양이 혀처럼 납작한 랑그드샤이든 바닐라 향이 나는 바삭하고 쫀득한 까눌레이든 이내 곰팡이가 피고 사라져 버릴, 녹아 버릴 것임을 알아서다. 제임스는 사람이 자신에게 빵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안다. 제임스는 안다.’
이 낙서는 어느 날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낙서의 여백엔 그림이 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늘 차차에 원고를 보내고 나면 조금 힘을 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가능성을 가진 낙서들을 띄엄띄엄 넘겨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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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이 글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미경 제 책상 위에 있는 종이 노트에서요. 이뿐 아니라 제 삶의 거의 모든 일은 이 노트에서 시작되는 셈이에요.
차차 글을 쓸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나요? 미경 저는 작가가 된 후 점점 더 음악이 귀찮게 여겨지더니 이젠 거의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가족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그것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차차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하세요? 미경 물건을 밖에 내다 버려요. 옷을 시작으로 책, 반찬통, 필기구까지요. 그럴 힘도 없을 땐 노트를 펼쳐서 제가 해둔 낙서를 봐요. 그러면 좀 웃을 일이 생기거든요.
차차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미경 태초에, 아침에, 가만히 같은 단어들을 좋아해요. 모두 사람이 없는 풍경이네요.
차차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미경 오월의봄에서 출간된 『작가노동 선언』을 읽고 있어요.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소속 작가들이 쓴 책인데요.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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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미경
『어떤 아이가』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돌 씹어 먹는 아이』로 창원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나의 진주 드레스』, 『생쥐 소소 선생』, 『가정 통신문 소동』등의 동화와 『토끼가 되었어』, 『안개 숲을 지날 때』등의 그림책을 출간했으며, 청소년 소설 『광인 수술 보고서』, 『나는 새를 봅니까?』와 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를 출간했으며 쓰고 그린 만화책 『오늘의 개, 새』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첩에 아무 글이나 쓰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song_mi_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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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더미가 가득 쌓여있고 그 앞에 엎드린 개를 보며 작가를 떠올렸어요. 우리에게 저 많은 종이 중 몇 장을 펼쳐 읽어준 것 같았어요. 나머지 종이도 펼쳐 보고 싶어져요. 작가의 노트에는 얼마나 근사한 낙서들이 있을까 궁금해져요.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기다려지고요.
친구들도 낙서를 하나요? 친구님의 노트에는 어떤 낙서가 있는지 들려주세요.
(그림 낙서라면 차차@readwithchacha를 태그 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세요. 차차도 같이 볼래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낙서가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어느 날의 신호등은 시가 되어 찾아와요. 송희지 시인의 시를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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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시를 쓸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나요?희지 애니메이션 <Hazbin Hotel>의 OST인 <🎵Addict>를 자주 듣습니다.
차차 이 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희지 시에서 나온 그대로, 사거리의 한 블록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이 장면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저는 역에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그 길목엔 신호등이 참 많았어요.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멈춰서야 했죠.
차차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희지 최근엔 희곡을 주로 읽습니다. 그중 와즈디 무아와드의 『화염』을 특히 인상 깊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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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희지
2019년부터 시를 발표해 왔다.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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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천천히 읽고 나니 ‘나는 신호등을 깨뜨리고 싶다.’는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을 것 같고, 눈빛은 강력할 것 같아요. 시인은 무엇에 몰두하고 누군가에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송희지 시인이 쿠키에서 ‘이 장면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시는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친구는 글로 ‘쓰고 싶다’고 느낀 장면이 있나요? 혹시 이번 주에 만났나요? 차차는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요. 오늘이 가기 전에 그런 ‘시적인 순간’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낙서가, 신호등이, 하루가,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4월의 마지막 편지를 보내요.
5월의 수요일에도, 차차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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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친구 ⚫ 차차야, 나는 슬픔에 빠진 친구에게 ‘괜찮아질 거야’보다는 ‘지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편인 것 같아. 감정을 덜어주거나 없애주려고 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어. 차차는 슬픈 사람에게 어떻게 위로해주니?
사르르🍦 미국에 살고있어 엑스팡 작가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삭막해져가는 세상인거같아도 주변의 따듯한 한 사람, 한사람이 기적처럼 나타나주는 덕분에 이곳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죠. 책을 사서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외계인의 모습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는 모습이 기대되어요! 슬픈 친구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 슬픔을... 모른척 하려고 해요. 괜히 그 사람의 슬픔에대해 말을 더하다가 실수해서 더 큰 슬픔이 될까봐요.
이오피🐣 슬픔에 빠진 친구를 위로 하는 방법 : 평소처럼 행동한다. 평소처럼 만나서 시덥잖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에 술 한잔하고. 평소처럼. 굳이 언어로 '다 괜찮을거야'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돌살이🪨 이제 이창동의 <밀양>, 이주란의 <밀양> (내가 붙인 제목)을 한 쌍으로 묶어서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소중한 존재를 잃은 도경과 연두가 서로의 곁을 지키려는 모습에서 언제나 묵묵히 신애 곁을 맴돌던 종찬 씨가 보였거든... 난 항상 마음을 큰따옴표로 확실히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침묵의 의미에 대해 가만 생각해본 시간이었어. 물론 나는 상대방이 말을 안 하면 헷갈리고 잘 모르겠어. 도경은 알았을까? 연두가 하지 않은 그 모든 말들을...?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그러고 있는 거야. 뭔가 조심스럽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냥 삼키게 돼. 너무 소중해서 그런가, 돌아올 반응에 상처 받을까 두려운 건가. 나도 잘 몰라. 그리고 나 어릴 적에 진영에서 초등학교 다녔어^^ 이주란 작가님 소설 도입부터 시간 여행 떠난 기분이 들었어. 정말 고마워. 차차야 건강하게 잘 지내! 그림책 이야기도 정말 좋았어. 앞으로 전철 타면 나보다 힘들어하는 사람 없는지 잘 살필게....(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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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님
오늘 차차의 편지는 어땠나요?
1분만 시간을 내서 차차에게 후기를 보내주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차차 또 만나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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