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가 좋을까, 생크림이 좋을까. 내가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고르고 있을 때, 초등학생 한 명이 쇼케이스 앞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는 쇼케이스에 바짝 달라붙어 케이크를 구경했고, 곧바로 나타난 엄마가 아이를 다그쳤다. 그렇게 꾸중을 들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닌 듯,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쇼케이스로부터 한 발짝 떨어졌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으로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거, 이거 사자.”
아이가 고른 것은 캐릭터 장식이 되어 있는 초콜릿케이크였다.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단호했다.
“안 돼. 그건 너무 달아.”
순식간에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이는 뾰로통해져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일주일 전부터 봐 두었던 건데, 아빠한테도 다 얘기해 뒀는데, 엄마는 맨날 엄마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내가 웃자, 아이는 나를 흘겨보며 엄마 등 뒤로 작은 몸을 숨겼다. 한편 아이의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케이크 박스를, 또 다른 한 손에는 투덜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베이커리를 나갔다. 쇼케이스 유리에는 아이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어릴 적에 나는 종종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곤 했다. 말 한 번 나눠 본 적 없는 같은 반 아이의 생일뿐만 아니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생일에도 그랬다. 심지어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엄마 친구 아들의 생일 파티에 간 적도 있었는데, 얼마나 어색하고 민망했던지.
“그런데 얘는 누구야?”
한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물었고, 엄마 친구의 아들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내게 몇 학년이냐고 거듭 물었고, 내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흥미 없다는 듯 돌아섰다. 그날 나는 나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 그러니까 한 살 더 많은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말없이 케이크를 먹었다.
아마도 그 시절 엄마는 내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할까 봐 걱정을 했던 것 같다. 하기야 나는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렸던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친구를 사귀게끔 해 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는 파티에서 만난 아이들과 그리 친해지지 못했다. 매번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 배만 채웠을 뿐이다. 누가 내게 말이라도 걸까 봐, 잔뜩 긴장한 채로.
그러나 엄마의 노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생일에도 모르는 애들을 초대했다. 그 무렵 엄마는 슈퍼를 가다가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내 또래 아이들을 만나면, 생일 파티 일시와 집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 민서 생일 파티 오면 재미있을 거야. 그날 오면 치킨이나 피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그러나 나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게 싫었다. 여기저기 흘리면서 지저분하게 먹고, 시끄럽게 떠드는 데다가, 제멋대로 뛰어다니면서 집을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떠난 후 뒷정리를 하는 건 늘 엄마였다. 엄마는 왜 힘든 일을 자처했던 걸까.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그때의 일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엄마에게 대놓고 물어 본 적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
“뭐, 내가 맨날 그랬니? 일 년에 한 번뿐이잖아. 그것도 너 고학년 되면서부터는 안 했어.”
“아니, 그래도 말이야. 나는 그 애들하고 별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걱정이 되어서 그랬지.”
“뭐가?”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릴까 봐.”
엄마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시청을 방해하다시피 계속 말을 걸었다.
“괜한 걱정을 했네. 내가 아무리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지. 학교생활 하다 보면 다 알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거라고.”
“아니야, 1학년 때였나?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 있냐고 물어보니까, 네가 없다고 했었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친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집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흐릿한 기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엄마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요즘은 그런 아이들도 없어. 이제 집에 놀러 오라고 하면 의심부터 할걸? 세상이 워낙 무서워져서 말이야.”
한편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출생과 초고령화 문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엄마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새삼스럽게 세월을 체감하게 되었다. 굽은 등, 흰머리, 목과 얼굴에 생긴 주름들, 돋보기안경을 쓴 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모습…….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다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습지 선생님을 했지만, 그 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급식소나 구내식당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했다. 이따금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훗날 갑상선 문제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일을 쉬어야 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그러고 보면 내가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일을 하셨는데, 그때는 왜 엄마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심지어 엄마는 퇴근 후에 집에 와서 또 반찬을 하고 청소를 했는데도 말이다. 아빠가 퇴근길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있을 때도,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할 때도, 엄마는 계속 집을 쓸고 닦고 정리했다. 생일 파티가 끝난 후 뒷정리를 할 때처럼. 그렇게 하는 건 일 년에 한 번뿐이었다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한평생 동안, 거의 매일을,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나? 그러니까 아빠 친구들 말고,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나 대학 동기들. 내 친구들의 엄마 말고, 진짜 엄마 친구. 한 번쯤은 있을 법도 한데, 어째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걸까. 엄마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나 아빠로 인해 알게 된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동호회도 잘 나가던데. 단체로 해외여행을 좀 가든지, 아니면 운동이라도 해 보는 건 어때?”
괜히 엄마가 걱정된 나머지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주 냉랭했다. 엄마는 오만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휴, 엄마는 인간이 지긋지긋해. 사람이 모이면 남 험담이나 하고 말이야. 결국에는 서로 헐뜯다가 싸우게 된다니까. 이제는 혼자가 편하다.”
나는 엄마가 어째서 인간이 지겨워졌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나도 나 나름대로 사는 게 바빴으니까. 친구를 만나 놀고, 연애를 하고, 직장에서 사귄 사람들을 만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스무 살 생일에 엄마는 내게 용돈을 쥐여 주면서 말했다.
“생일인데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다가 와. 너무 늦게 들어오지는 말고, 또 술 마시다가 밤새우지 말고.”
그날 내가 몇 시까지 친구들과 놀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마도 거나하게 취한 채 소리를 지르며 놀았을 것이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던 나도, 엄마가 그렇게 걱정하던 나도, 결국에는 이렇게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그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고.
내가 친구를 한 명씩 사귀어 가는 동안, 엄마는 친구를 한 명씩 잃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일과 가사 노동을 동시에 감당했기 때문에. 혹여 그게 아니라면 금전적인 문제나 성격 문제로 싸웠기 때문에.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질병이나 죽음으로 인해…….
그래서 나는 엄마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평생 동안 함께할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진숙이, 우리 진숙이. 그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얼른 고향집에 가 초를 켜야지. 사랑하는 진숙이, 사랑하는 진숙이, 하고 노래를 불러야지.
내 손에는 아까 그 아이가 사려다가 미처 사지 못한 초콜릿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엄마는 의외로 단것을 좋아하니까.